태평무전수관

전수관 소개

태평무의 계승과 후견양성의 산실

태평무전수관은 인간문화재이셨던 故강선영(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명예보유자)선생에 의해 한국의 춤유산을 계승하고 재능있는 무용인들의 발굴양성과 개방화된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98년 고향인 안성에 완공한 문화공간이다.


태평무전수관의 설립자인 故강선영선생은 예총회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한국 예술계의 거목으로 활동하셨다. 현재 태평무전수관은 태평무보존회와 강선영춤보존회, 태평무전수관한국무용예술단들이 각종 공연과 전승활동을 통하여 한국무용의 대중화와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태평무전수관은 뉴욕 링컨센터 공연을 비롯한 세계 170여 국가에서 300여 회의 한국춤을 공연하였으며, 지난 해에도 국립국악원에서 “예술 혼 맥”공연과 안성에서 “토요전통무용상설무대”를 공연하였다. 또한 정부로부터 우리춤의 공익활동지원사업를 지원받아 “다문화시대에 찾아가는 우리춤 여행”이라는 주제로 전국 최우수 축제 현장에서 우리춤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연면적1.291.179㎡로 대공연장과 조명음향실, 연습1,2실 분장실, 식당과 사무실, 야외공연장을 갖췄으며, 관람객의 대기시간에는 세계풍물과 태평무 관련자료를 전시한 태평무전수관 전시실을 돌아 볼 수 있다.

명가 강선영

명가 강선영선생, 춤의 여정

우리나라 근대춤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한성준(1875-1941)선생의 유일한 생존 제자이셨던 강선영선생이 영면하셨다.


그동안 한국무용계의 큰 어른으로서 무용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강선영선생은 10대 중반에 전통춤의 거장 한성준선생의 제자로 입문하여 태평무를 비롯해 한량무, 승무, 즉흥무, 장고춤 등 스승이 만든 한국 전통춤의 백미들을 배워 전승시켰다. 그 중 강선생에 의해 내려온 한량무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기검무는 경기도 문화재 53호로 각 지정되어 그 가치성을 인정받고 있다.




안성이 고향인 명가 강선영선생은 1940년 서울 부민회관 무대에 선 이래 지금까지 170여 개국에서 1,500회가 넘는 해외 공연 기록을 세웠다.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지난 2006년 한국 전통무용가로는 최초로 뉴욕 링컨센터 주립극장에서 한국의 찬란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고, 2013년도에는 200여명의 제자들과 함께〈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공연을 가진 바 있다.


타고난 안무가적 기질로 국립무용단을 이끌면서 ‘원효대사’‘황진이’‘수로부인’ 등 수없이 많은 무용극을 창작해왔고, 그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태평무는 ‘몸과 마음이 일치된 예술 춤’이라는 찬사와 함께 한국 명무의 반열에 오르며 중요무형문화재92호 태평무보유자로서 살아 오셨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춤을 향한 외길 인생을 살아온 강선영선생의 춤인생...


집을 세울 때 네 기둥이 단단해야 하듯 한국 전통춤이 제대로 계승되어 이땅 이시대의 춤정신이 올바로 선다는 일념으로 개인의 사재를 털어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전수관을 건립하셨다. 이곳에서 그동안 300백 여명의 태평무이수자와 전수자를 배출하여 한국 전통춤의 지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셨다.


예술인으로서 한 길만을 걸어 온 강선영선생의 제14대 정계입문은 문화예술인들의 지위향상과 국가문화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문화예술의 도약과 발전을 위한 일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한국무용협회의 이사장과 한국예총 의회장직을 역임한 선생으로서는 보다 넓은 무대로 활동역을 넓히는 것이 예술인들의 권익옹호라는 한 부분을 담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시 문화상과 국민훈장 목련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신 명가 강선영선생... 선생님의 아흔둘 일생은 우리 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드높은 등대의 한줄기 빛이음을.. 그 속에서 한국춤의 과거와 미래가 있었음을 오늘 기억하게 된다.


故 姜善泳...그의 이름은 무용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만 아니라 한국 무용의 맥과 흐름을 함께 해온 무용역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일세를 풍미한 불세출의 예인으로서 선생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